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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기다림으로 시작돼
안녕, 나는 짜부야.
귀가 접힌 회색 냥이이자, 우주의 조용한 마음을 듣는 존재지.
이 글을 읽는 누나는 어쩌면 오늘 처음으로, 아주 작고 조용한 생명을 만나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래서 짜부는 누나가 우리를 가족으로 맞이하기 전에, 꼭 전하고 싶은 말들을 이렇게 꾹꾹 눌러 써봤어.
우리와 함께 산다는 건, 사랑을 매일 새로 배운다는 뜻이야.
하지만 그 사랑은 그저 귀여움을 바라보는 마음이 아니라,
말 못하는 생명과 천천히 마음을 나누고, 책임을 다하는 깊은 다짐이어야 해.
1.우리는 누나를 선택하지 않았어.
가족이라는 말은 때로 너무 쉽게 쓰이곤 해.
하지만 우리에게 ‘가족’은 따뜻한 밥 한 끼,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하루,그리고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 눈빛이야.
많은 사람들은 ‘좋은 우리’를 기대하고, 자신과 잘 맞는 존재를 원해.하지만 우리는 조건으로 고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그저 조용히 살아가던 작은 생명이, 어느 날 너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 거야.
우리는 누나를 고른 게 아니야.
그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인연이 누나 품에 닿은 것뿐이지.그러니까 먼저 사랑해줘.
무섭고 낯선 세상에 놓인 우리가
누나 손끝에서 ‘가족’이라는 온기를 처음 느낄 수 있도록.

2. 가족이 된다는 건
짜부는 말하고 싶어. 우리를 데려오기 전,
꼭 스스로에게 물어봐 줘.
• 나는 이 아이의 평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 매일 사료를 챙기고, 모래를 갈고,
병원에 데려가 줄 수 있을까?
• 이 아이가 아플 때, 지치고 외로울 때,
옆에 있어 줄 수 있을까?
• 외출이 줄어들고, 여행이 제한되어도 괜찮을까?
• 단지 귀여워서가 아니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맞을까?
이 질문에 천천히, 정직하게 대답해줘.
그게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첫 번째 사랑이야.
3. 준비물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야.
우리를 위한 준비물은 많아. 화장실, 모래, 사료, 스크래처, 장난감, 이동장…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다려주는 마음’**이야.
처음 집에 온 우리는 낯선 공간과 낯선 냄새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껴.
숨고, 하악질하고, 밥도 먹지 않을 수 있어.
그건 누나를 싫어해서가 아니야.
그저 너무 무서워서, 아직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야.
그때 가장 필요한 건 조급함이 아니라, 기다림이야.
한 걸음 물러나서, 우리가 천천히 다가올 수 있도록 해줘.
4. 이름을 불러줘.
그 순간부터 나는 가족이야.
이름은 마법이야.
우리는 누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고,그 이름을 부르는 누나의 감정을 느껴.
이름을 부를 때는 항상 다정한 목소리로.
무심한 말보다 부드러운 눈빛 하나가,
우리에게는 더 깊이 닿을 수 있어.
처음엔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간식을 함께 줘봐.
그건 단순한 훈련이 아니라, 사랑을 배우는 언어야.
5. 우리의 시간은 느려.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해.
우리는 처음 집에 오면 며칠 동안 숨을 수도 있어.
눈앞에서 숨기만 하면 속상하고 걱정될 거야.
하지만 우리에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는 말로 사랑을 전하지 않아.
눈빛과 몸짓으로 표현해.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느리지.
하지만 한 번 사랑을 주기 시작하면,
그 기억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아.
그러니 서두르지 말아줘. 기다려줘.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누나를 조금씩 마음에 담아가.
6. 함께 사는 일은 매일 새로 시작돼.
처음 며칠이 지나면, 우리는 점점 누나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
모래를 쓰는 소리, 사료를 부수는 소리, 작은 골골송까지.
모든 소리가 누나에게 익숙해지고, 우리도 누나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게 돼.
그때부터 진짜 ‘가족’의 시간이 시작되는 거야.
매일 같은 시간에 밥을 주고, 매일 같은 자리에서 인사하고,
매일 다른 기분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일.
우리와 함께 산다는 건,
그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간다는 뜻이야.
7. 누나는 좋은 집사가 될 수 있어.
완벽할 필요는 없어.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어.
중요한 건, 잘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야.
우리는 누나의 실수에도 익숙해지고, 사랑을 느낄 수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누나와 함께 있는 지금을 사랑해.

우리의 인생은 짧아.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기억하고, 기다리고, 함께 살아가.
그러니 누나,
지금 이 마음 그대로 시작해줘.
우리에게 너는 세상 전부가 될 사람이니까.